편리함 때문에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전기 면도기를 사용해 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비싼 녀석이 아니어서 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전기 면도기를 사용했을 때는 일반 카트리지 면도기로 면도했을 때 받는 그 상쾌한 느낌이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면도 후의 상쾌한 느낌 때문에 지금까지도 카트리지 면도기만을 고수하며 사용하고 있다.
2004년 질레트배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방송 청취의 대상이 대부분 수염따위는 고민하지 않을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면도기 회사가 스폰서를 하는 점이 특이했었다. 하지만 그 때 캐치프레이즈가 아직까지 뇌리에 있는 것을 보면 마케터가 천재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애 첫 면도는 질레트와 함께
남자를 위한 최상의 선택 질레트
갑자기 왠 뜬금 없는 질레트 타령인가 하면 현재 국내 면도기 카트리지 시장에서 점유율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 바로 질레트이다.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내 생애 첫 면도는 도루코였던 것 같긴 하지만 어느 순간 나 역시도 아무 고민없이 사용하고 있던 제품은 질레트 면도기였다.
이놈의 면도기 카트리지는 별 거 아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최첨단 과학을 배경으로 한 금속 가공 기술의 결정체라는 이유로 꽤나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남자라면 수염이 나기 시작해서 면도를 시작한 시점부터 죽을 때까지 그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면도기는 평생에 걸쳐 꽤 높은 유지 보수 비용이 드는 도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도기 날 하나 구매하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마트에서 쇼핑하다가 대충 다른 물건들 사이에 던져 넣고 결제하는 패턴을 아마도 평생 반복하기 때문에 저 높은 질레트의 점유율이 크게 변할 확률은 사실 높지 않을 것이다.
질레트 면도기의 특징은 처음 개봉하고 면도를 할 때의 훌륭한 밀착감과 절삭력이다. 날이 잘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실제 면도를 해보면 정말 깔끔하게 면도가 잘 된다. 하지만 내구성은 약해서 좀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면도하다가 내 피부를 베어먹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절삭력이 떨어지기 전에 카트리지를 갈아주는 것이 정석이긴 하지만 앞서도 얘기한 것과 같이 유지보수 비용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카트리지를 쳐넣는 순간은 내 경우에 보통 피를 보고 난 이후일 확률이 높았다.
십년 쯤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면도기 카트리지를 구매하다가 질레트가 아니라 쉬크 면도기를 구매한 적이 있었다. 왜 늘상 쓰던 질레트가 아닌 쉬크를 샀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인터넷에서 가격 비교하다가 질레트보다 저렴하게 묶음 배송을 했던 쉬크 제품을 구매 했었던 것 같다. 쉬크 면도기를 개봉 후 처음 사용할 때에는 질레트보다 잘 짤린다는 느낌이 없어서 싼게 비지떡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것은 쉬크와 질레트의 제품 간에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쉬크는 제품을 개발할 때 전통적으로 절삭력 보다는 안전을 우선하는 제품을 추구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는 좋은 내구성과도 연결되어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내 경우 쉬크 제품을 사용한 이후 카트리지 교체 주기가 길어져서 몇 달에 하나 꼴로 바꿔서 사용했던 것 같다. 쉬크 제품은 절삭력이 떨어져도 피를 보는 확률이 질레트 제품보다는 현저하게 낮았지만 수염이 뜯기는 느낌이 들면 카트리지를 교체해 줬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알게된 제품이 면도날 클리너인 레이저핏. 칼 가는 숯돌처럼 생겼는데 저 위를 몇번 문질러 주는 것 만으로도 다중 면도날을 가진 면도기 카트리지의 노폐물을 제거해줘서 절삭력을 유지한다는 설명이었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르다.
구매 후 사용해 본 느낌은 오래 사용한 쉬크 면도기 카트리지를 레이저핏으로 잘 문질러 줬는데 절삭력이 살아나는 느낌? 레이저핏을 보름 정도 사용해 봤는데 오래 사용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절삭력은 유지해 주는 인상을 받았다. 내 경우는 쉬크 제품을 오래 사용해 왔어서 절삭력에 많이 민감하지는 않기 때문에 쉬크 + 레이저핏 조합이면 1년에 카트리지 한 두개로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면도 관련 글을 적다 보니 사회 초년 시절에 다녔던 동네 이발소가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다니던 그 동네 이발소에서는 가끔 손님이 없을 때 이발을 모두 마치고 나서 면도를 꽁짜로 해 주시곤 했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면도 거품질 후 날이 잘 선 외날 면도기로 깔끔하게 면도 받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았었다. 내 자신을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매일 하는 면도이지만 내 스스로가 특별하고 싶은 날에는 좀 더 신경 써서 면도를 해 봐야 겠다. 지름이 늘 그러하듯 목적이 생겼으니 구매할 장비 리스트업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오늘도 지름은 지름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