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소설. 추리 소설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공허한 십자가는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 보다는 범인이 가지는 죄의식의 무게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사형 제도의 허무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살인범의 죄의식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피해자의 유가족의 슬픔의 무게감과 이를 치유하기 위한 유가족들의 노력들이 이 책에는 표현되어 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한다면? 사형 제도에서 가해자의 사형은 피해자 유가족에게는 그저 통과하는 관문과도 같다. 그 관문을 통과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거나 가족의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는 것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이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명확한 살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살인이라고 볼 수 있는 세월호 사태와 옥시 살균제 피해 사건도 유가족에게는 그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이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이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가해자로 하여금 죄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가 사법적 처벌이기에 이는 피해자를 치유하는 관문의 역할일 것이다.
작금의 어수선한 정국과 함께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