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는 젠틀맨의 갑옷이고, 킹스맨 에이전트는 현대판 기사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은 뻔한 스파이 액션물이다. 하지만 여기 스파이로 등장하는 콜린 퍼스는 여느 <007> 영화에 등장하는 스파이들 보다 더 자극적이고 섹시하다. 주인공은 분명 에그시 역의 태론 에거튼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모두 해리 역의 콜린 퍼스의 몫이다. 수트를 입은 중후한 신사가 검은 우산을 휘두르며 과격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이질적이게 모순적이지만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게 되나 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몽환적인 유쾌함도 좋았지만 <킹스맨>의 중후함 속의 경쾌함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화려한 액션씬을 보고 이런 유쾌한 감정이 들었던 적은 <황혼에서 새벽까지>, <킬빌> 이후 내가 봤던 영화 중에서는 전무했는데 해리가 미국 사이비 교회에서 마치 좀비들을 소탕하듯 사람들을 학살해 나가는 장면은 잔인한 고어물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발랄한 락엔롤 음악과 함께 키득키득 거리며 즐기기에 충분했다. 충분히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선혈이 낭자하지 않는 절제된 화면도 유쾌함에 한몫했으리라.
독특한 캐릭터가 맘에 드는 영화라 시리즈물로 계속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긴 하지만 콜린 퍼스의 빈자리를 다른 누가 채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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