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때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듯한 감동을 경험했던 광장 문화의 세대가 2017년 3월 10일 민주주의의 역사에 기록될 새로운 한 페이지를 남기는 감동의 시간을 또 한번 경험하였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 대행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 선고를 낭독하는 22분 간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역사적인 선고 낭독을 경청하고 있었다. 선고 초반 여러 사안들이 탄핵 인용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발언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고 불안감을 동반한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중반을 넘은 선고 낭독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는 더 큰 벅찬 감동이 가슴 한켠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고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선고의 마지막은 벅차오르는 감동이 짜릿한 쾌감으로 변하는 시점이었고, 이 모든 감동의 시작이었던 광장에 모인 촛불 집회의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스쳐갔다.
촛불 집회 참석한다고 세상이 바뀌기라도 하겠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촛불 집회에 참석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작년 탄핵 소추가 발의되기까지 촛불 집회에 참석했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행동하지 않기에 촛불 집회는 국민의 뜻이 어떤지 알리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갖고 정치적 의사의 적극적 행동을 하지 않았던 내게 어찌보면 촛불 집회 참석은 그 시절의 반성과 같은 것이었다.
절망이라는 죄는 신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7년 봄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스템은 그 헌법이 설계되었던 취지대로 동작하였다. 나라 꼴이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원칙을 바로 세우면 그래도 바꿀 수 있겠다는 사실에 조금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